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한국사

(102)
정약용의 유배, 단순한 실각이 아니었다? 정약용의 유배, 단순한 실각이 아니었다?천주교 박해와 공노비 민란, 그리고 조선 후기 지식인의 좌절1. 정약용 유배 사건이란?많은 사람들은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이 유배를 간 이유를 단순히 **‘개혁파 남인이라서 실각했다’**고 알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천주교 박해(신유박해), 신분 질서 붕괴, 노비의 봉기, 그리고 조선 지식인들의 이상과 좌절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특히 1801년의 유배는 단순한 정치적 숙청이 아니라, 조선 후기 변화의 갈림길에서 벌어진 사상·제도·신앙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입니다.2. 배경: 정조의 죽음, 그리고 정치적 지각변동1799년, 정조가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개혁파 남인 세력은 정치적 후견인을 잃게 됩니다.정조는 규장각을 통해..
조선과 일본, 다시 손을 잡다 조선통신사 이야기 (전쟁 후 외교 복원의 결정판) 조선과 일본, 다시 손을 잡다 조선통신사 이야기 (전쟁 후 외교 복원의 결정판)우리가 잘 모르는 조선 통신사 이야기 – 전쟁 후 외교 복원의 결정판1. 조선 통신사란?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는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공식 외교 사절단입니다.특히 임진왜란(1592~1598) 이후 국교가 단절된 상황에서, 조선과 일본은 전쟁의 상처를 봉합하고 국교를 재개하기 위해 17세기 초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총 12차례 통신사를 교류하게 됩니다.'통신(通信)'은 서로 소식을 전한다는 뜻이며, 이는 단순한 외교 사절이 아니라 양국 간 평화 의지를 상징하는 문화·외교 대표단이었습니다.2. 왜 통신사가 파견되었나?배경 ① 임진왜란의 후유증→ 일본의 침략으로 조선은 큰 피해를 입었고, 민심은 깊은 반일 감정에 휩싸였음.배경 ②..
양반도 반대한 조세개혁? 조선의 조세개혁, 대동법 전국 확대 시행 양반도 반대한 조세개혁? 조선의 조세개혁, 대동법 전국 확대 시행우리가 잘 모르는 조선의 조세개혁, 대동법 전국 확대 시행1. 대동법이란 무엇인가?대동법(大同法)은 조선 시대 세금 제도 중 가장 큰 변화를 이끈 개혁입니다.기존의 공납 제도가 각 지방 백성에게 잡다한 물품을 실물로 상납하게 했다면, 대동법은 쌀(또는 동전)을 세금으로 납부하게 만든 제도입니다.한마디로,“더 이상 베나 종이를 직접 바치지 않고, 쌀로 통일해서 납부한다.”이는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부담을 줄여주고, 부패한 수령과 공인(納官商)의 횡포를 막는 효과가 있었습니다.2. 왜 대동법이 필요했나?조선 전기의 공납 제도는 시대가 지날수록 비효율과 부패의 온상이 되었습니다.백성들이 실물로 바치는 품목이 다양하고 복잡예: 종이, 직물, 젓갈, ..
평안도 사람은 벼슬 못 한다고? 조선 후기사회의 균열 홍경래의 난 “평안도 사람은 벼슬 못 한다고? 조선 후기사회의 균열 홍경래의 난”우리가 잘 모르는 조선 후기사회의 균열, 홍경래의 난1. 홍경래의 난이란?**홍경래의 난(1811~1812)**은 조선 순조 11년에 서북 지역(평안도)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농민 반란입니다.지도자는 홍경래(洪景來), 중심 세력은 몰락 양반, 중인, 천민, 상민, 농민 등이 뒤섞여 있었고, 그들은 “탐관오리와 양반을 몰아내자”는 구호로 **진무청(진군조직)**을 만들어 직접 무장을 했습니다.이 사건은 단순한 지방 소요가 아닌, 조선 후기 신분제와 중앙집권체제의 한계를 드러낸 구조적 위기의 상징이었습니다.2. 왜 반란은 ‘평안도’에서 일어났을까?당시 평안도는 조선 중앙에서 철저히 차별받던 지역이었습니다.관직 진출 제한: 평안도 출신은 과..
조선 왕이 무릎 꿇고 머리를 아홉 번 조아렸다? ‘삼전도의 굴욕’과 병자호란의 후폭풍 조선 왕이 무릎 꿇고 머리를 아홉 번 조아렸다?‘삼전도의 굴욕’과 병자호란의 후폭풍우리가 잘 모르는 ‘삼전도의 굴욕’과 병자호란의 후폭풍1. 병자호란이란 무엇인가?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입니다.이는 임진왜란(1592)이 끝난 지 40여 년 만에 또다시 조선이 겪은 대규모 외침이었으며, 단기간에 수도가 포위되고 왕이 항복하게 되는 조선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힙니다. 2. 전쟁의 배경 – 조선은 왜 청과 싸우게 되었나?병자호란 이전, 청나라는 명나라를 공격하며 중화의 지위를 요구했고, 조선에게도 청을 ‘상국’으로 섬기라고 압박합니다.하지만 조선은 이미 **명나라와의 오랜 외교 관계(사대관계)**를 중시했고, 내부에서도 "형제의 나라 명을 배신할 수 ..
고려 수도가 함락된 적이 있다? 홍건적의 침입과 개경 천도 사건 고려 수도가 함락된 적이 있다? 홍건적의 침입과 개경 천도 사건우리가 잘 모르는 ‘홍건적의 침입’과 개경 천도 사건1. 홍건적이 누구인가?홍건적(紅巾賊)은 14세기 중엽, 중국 원나라 말기 한족 농민 반란군입니다.그들은 붉은 두건(홍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홍건적’이라 불렸습니다.이들은 원나라의 지배에 저항하며 각지에서 봉기했고, 그 중 일부 세력이 산둥·요동 지역을 거쳐 고려로 침입하게 됩니다.이 침입은 단순한 약탈 수준이 아니라, 수도 개경까지 함락시키고 왕이 피난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발전합니다. 2. 14세기 고려, 이미 혼란의 시기였다홍건적의 침입이 있었던 1359년~1361년, 고려는 이미 내부적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원나라 간섭기 말기로, 고려 정치가 극도로 불안정했고왜구의 ..
조선의 자유무역 혁신 정조대왕의 ‘신해통공’이 만든 조선판 경제개혁 조선의 자유무역 혁신정조대왕의 ‘신해통공’이 만든 조선판 경제개혁 1. “정조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만큼의 행정가였다”정조대왕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성군(聖君)으로 꼽힙니다.대중에게는 주로 “정약용을 발탁했다”, “규장각을 설치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실제로 정조는 경제 정책에서도 혁신적인 결단을 내린 통치자였습니다.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신해통공(辛亥通共)’**입니다.이 정책은 1791년(정조 15년), 조선 후기 상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시장의 개방 조치로, 오늘날로 치면 독점 폐지, 자유시장 도입, 경제 민주화와 같은 조치에 해당합니다. 2. 당시 한양 시장은 누구의 것이었나?조선 후기, 특히 수도 한양의 주요 시장은 **육의전(六矣廛)**이라는 ..
세종대왕이 울릉도에 사람을 보낸 이유? 이사부의 울릉도·독도 편입 이후, 세종의 울릉도 재조사 사업 세종대왕이 울릉도에 사람을 보낸 이유?조선 전기의 해양 주권 재확인 프로젝트1. 울릉도는 고려가 아니라 조선이 다시 확인했다?대부분의 한국인은 "울릉도와 독도는 신라 시대 이사부가 편입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하지만 조선 세종 시기에 이 영토가 다시 실질적으로 조사를 받고, 조선 영토로 행정 조치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이 사건은 바로 **세종 13년(1431년)**에 있었던 **‘울릉도·우산도 재조사 및 주민 정리 명령’**입니다.이것은 단순한 섬 탐사가 아니라, 해양 영토에 대한 조선 정부의 주권 확인이며, **독도 영유권 주장에도 연결되는 중요한 전거(근거)**가 됩니다.2. 사건의 배경 – ‘울릉도에 사람이 산다’는 보고조선 초, 울릉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