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03) 썸네일형 리스트형 조선 말기 최초의 정치 망명 사건 – 김옥균의 일본 망명과 그 숨은 이야기 조선 말기 최초의 정치 망명 사건 – 김옥균의 일본 망명과 그 숨은 이야기1. 김옥균 망명 사건이란?김옥균은 갑신정변(1884)을 주도한 개화당의 핵심 인물이자 조선 말기 급진적 개혁을 시도한 대표적 인물입니다. 하지만 갑신정변이 3일 만에 실패로 끝난 이후, 김옥균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일본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외 도피’가 아니라, 조선사 최초의 정치적 망명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큽니다.그는 1884년 12월 일본 제물포 함선을 통해 극적으로 탈출한 뒤,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일본 정계와 교류를 시도하고, 조선 개혁에 대한 외교적·사상적 지지 기반을 모색합니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그를 반역자로 간주하고 귀국을 요구하며 일본 정부에 외교적으로 압박을 가하게 .. [이괄의 난] 광해군 폐위 직후, 조선 수도를 뒤흔든 반란 [이괄의 난] 광해군 폐위 직후, 조선 수도를 뒤흔든 반란1. 이괄의 난이란? “이괄의 난”은 조선 인조 2년(1624년), 인조반정의 공신이었던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괄(李适)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조선 초유의 수도 점령형 반란입니다.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즉위한 후 불과 1년 만에 일어난 이 반란은, 조선 사회 내부의 균열과 파벌 간 갈등, 북방 국방체계의 붕괴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무엇보다 이괄의 난은 단순한 ‘반정의 불만’이 아닌, 조선 후기 전개될 여러 민란과 전쟁의 전조 현상이자 정치적 위기의 축소판이었습니다.2. 이괄의 난 사건의 배경 – 인조반정 이후의 불만✅ 광해군의 폐위와 인조반정(1623)광해군은 중립 외교와 내부 개혁을 시도했지만, 대북 세력에 대한 숙청과 의붓동생 영창대군의 죽.. 삼별초의 강화도 봉기, 고려와 몽골 사이에서 맞선 마지막 저항 삼별초의 강화도 봉기, 고려와 몽골 사이에서 맞선 마지막 저항1. 삼별초 봉기란? ‘삼별초(三別抄)’는 고려 후기, 몽골과의 강화에 반대하며 일어난 무장집단의 이름입니다. 고려 정부가 몽골과 강화 조약을 체결하고 개경으로 환도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무신정권의 군사 조직이었던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봉기를 일으킵니다. 이는 단순한 군 반란이 아니라, 외세에 맞선 고려 민중의 마지막 항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많은 이들이 동학농민운동, 임진왜란 등은 잘 알지만, 삼별초의 저항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고려 후기 최대의 민중 무장 저항이자, 외세에 맞선 자주독립 의식의 중요한 사례입니다.2. 배경 – 고려의 항몽 전쟁과 강화 조약 체결13세기 초부터 몽골은 유라시아 전역을 정복해나가며.. 조선 초기 최대의 반란, 이시애의 난 – 함길도의 분노가 폭발하다 조선 초기 최대의 반란, 이시애의 난 – 함길도의 분노가 폭발하다1. 이시애의 난이란? “이시애의 난”은 조선 세조 12년(1466년)에 함길도에서 발생한 지방 반란으로, 지방 세력과 중앙 권력 간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건입니다. 특히 이시애는 조선 초기 지역 유력 가문이었으나, 중앙 집권 정책에 반발해 무장 봉기를 일으켰습니다.이 사건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조선 초반 중앙집권체제 강화와 지역 세력 통제 과정에서 나타난 구조적 갈등의 산물이며, 이후 조선 왕조의 정치·행정 운영 방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습니다.2. 배경 – 세조의 중앙집권 정책과 향리 갈등조선 초기에는 고려 말의 혼란한 권력 구조를 안정시키기 위해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세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 조선 왕실 무덤 도굴 시도?! '오페르트 도굴 사건'의 전말 조선 왕실 무덤 도굴 시도?! '오페르트 도굴 사건'의 전말1. 오페르트 도굴 사건이란?1868년(고종 5년), 독일 상인이자 상하이 거주 무역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Ernst Oppert) 가 조선의 남연군(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묘를 도굴하려 했던 충격적인 사건입니다.조선 정부는 쇄국 정책을 유지하며 외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서양 열강의 반발이 커져가던 시기였습니다. 오페르트는 통상을 요구하며, 대원군의 약점을 노리기 위해 그의 부친 묘소를 직접 파헤치는 전례 없는 무례를 저질렀습니다.이 사건은 조선이 외세와 본격적인 충돌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고, 한국 근대사에서 외세의 무력 시도가 정치적·문화적 충격으로 이어진 대표적 사건으로 기록됩니다.2. 사건의 배경 – 통상 요구와 .. 일본에 맞서 독도 지킨 조선의 민간인 외교관 – ‘안용복 도해 사건’ 일본에 맞서 독도 지킨 조선의 민간인 외교관 – ‘안용복 도해 사건’1. 안용복, 그는 누구인가?안용복, 독도 도해 사건, 조선 민간 외교관안용복은 조선 숙종 대(17세기 말~18세기 초)에 활동한 평민 신분의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어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직접 맞서 싸운 최초의 조선인 민간 외교관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그의 행적은 1693년과 1696년, 두 차례 일본으로 건너간 ‘도해 사건’을 통해 기록되어 있습니다.당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고유 영토였지만, 일본 어선의 불법 조업이 잦았고, 일본 측은 은근히 ‘자국 영토’라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어부였던 안용복은 울릉도 근해에서 일본 어민과의 갈등을 계기로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의 입장을 주장하.. 조선과 미국의 첫 충돌? –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진실 조선과 미국의 첫 충돌? –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진실1.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란?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1866년 조선 고종 3년, 평양 대동강에서 발생한 조선과 미국의 첫 무력 충돌 사건입니다.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는 통상 개방을 목적으로 조선에 무단으로 접근하다가, 평양 관민의 저항으로 침몰하고 선원 전원이 사망한 사건입니다.당시 조선은 쇄국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외국과의 무역이나 통상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양 열강의 잦은 통상 요구가 이어지던 가운데, 제너럴 셔먼호는 사전 협의 없이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충돌을 일으킨 것입니다. 2. 사건의 배경 – 쇄국 정책과 서구 세력의 팽창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서양 열강의 동아시아 진출이 본격화됩니.. 고려 흥화진 전투: 잘 알려지지 않은 전환점, 양규 장군의 숨은 승전 고려 흥화진 전투: 잘 알려지지 않은 전환점, 양규 장군의 숨은 승전1. 흥화진 전투란? 고려 현종 1년(1010), 거란(요나라)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한반도로 침입해오면서 벌어진 전투입니다.특히 흥화진은 압록강을 넘어 조선을 향한 거란군이 반드시 지나야 할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이에 거란은 흥화진 포위를 시도했으나, 순검사 양규(楊規) 장군은 단호하고 끈질긴 방어로 이를 저지했습니다.이 전투는 조선·고려 외교와 방어 정책의 중요한 갈림길이었으며, 이후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시발점이었습니다.2. 흥화진 배경 – 고구려 계승과 강동6주 확보의 의미고려 성종 14년(995), 강동 6주를 확보한 이후 축조된 흥화진은 고려의 북방 방어 체계의 핵심이었습니다.원래는 서희의 외교 담판 덕분에 .. 이전 1 ··· 7 8 9 10 11 12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