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미국의 첫 충돌? –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진실
1.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1866년 조선 고종 3년, 평양 대동강에서 발생한 조선과 미국의 첫 무력 충돌 사건입니다.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는 통상 개방을 목적으로 조선에 무단으로 접근하다가, 평양 관민의 저항으로 침몰하고 선원 전원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당시 조선은 쇄국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외국과의 무역이나 통상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양 열강의 잦은 통상 요구가 이어지던 가운데, 제너럴 셔먼호는 사전 협의 없이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충돌을 일으킨 것입니다.
2. 사건의 배경 – 쇄국 정책과 서구 세력의 팽창
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서양 열강의 동아시아 진출이 본격화됩니다. 특히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은 조선에 통상 요구를 수차례 전달하였으나, 조선은 강력한 문화적 자부심과 유교적 세계관에 따라 이를 거절해왔습니다.
이런 가운데, 제너럴 셔먼호는 '통상 요청'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평양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무단 침입에 가까웠고, 조선 정부는 이를 ‘불법 무력 진입’으로 간주하였습니다.
▶ 제너럴 셔먼호는 상선으로 위장했지만, 무장을 갖추고 있었고, 선원들 다수가 군인 출신이었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 평양 주민들은 이 배의 정체와 목적을 의심하며 격렬한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3. 충돌의 전개 – 대동강에서의 최후
셔먼호는 대동강을 따라 평양 중심부까지 진입해 현지 상인들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셔먼호 측이 무력으로 물자와 식량을 강탈하려 하면서 긴장이 고조됩니다.
이에 격분한 평양 주민들과 관군은 조직적으로 대응하였고, 배에 불을 지르며 전면적 충돌이 발생합니다.
이 과정에서 셔먼호는 불타 침몰되었고, 선원 전원이 사망하였습니다.
▶ 흥미로운 점은, 이 전투의 주도자로 나중에 대원군 이하응이 사건을 직접 보고받고 대응책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는 점입니다.
▶ 조선은 이 사건을 ‘외세로부터의 자주 수호’로 인식했고, 향후 더 강력한 쇄국 정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 사건의 여파 – 신미양요로 이어지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 이후 미국은 격분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미국과의 무력 충돌)**를 일으키는 직접적 계기가 됩니다.
▶ 미국은 군함 5척과 해병 수백 명을 이끌고 강화도에 상륙
▶ 조선군과 전투를 벌였고, 광성보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국군이 일부 승리했으나 결국 철수
이렇듯 셔먼호 사건은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라, 조선과 미국의 첫 공식적 무력 충돌이자, 서세동점의 흐름 속에서 조선이 직면한 외교·군사적 도전의 시작이었습니다.
5. 왜 이 사건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 국내 교육과정에서는 주로 ‘신미양요’에 집중되어 있음
▶ 사건의 규모나 전투 양상이 소규모였기 때문에 주목도가 낮았음
▶ 미국 역사학계에서도 상대적으로 비중이 크지 않아 대중 콘텐츠로 발전되지 않음
하지만 이 사건은 동북아시아에서 **‘조선이 서구 제국주의에 처음으로 반기를 든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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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단순한 외국 배 침몰 사건이 아닙니다. 이는 조선이 독립성과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외세의 요구에 ‘노(NO)’라고 했던 최초의 공식적 충돌 사례였습니다.
비록 이후 신미양요로 이어지며 군사적 위협을 더 크게 맞이하게 되었지만, 당시 조선의 태도는 ‘굴복’보다는 ‘저항’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외교적 주체성과 민중의 대응력, 그리고 19세기 조선의 시대적 고민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역사는 외교로 시작해, 민중의 저항으로 완성됩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그 교훈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훈은 지금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외세와의 마찰, 주권을 지키기 위한 결단,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평양 백성들의 용기.
이 사건은 한낱 과거가 아닌, 오늘날 우리 외교와 안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단단한 원칙과 분명한 대응이야말로, 작은 나라가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됩니다.